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,
나중에 성종에게 내쳐지고 사사되었으며
그 한이 연산군을 더욱 폭정으로 내몰았다 알려져 있지요~
그런데,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가 후궁 출신인 것, 알고 계신가요?
후궁, 임금의 첩이라 할 수 있지만, 이는 일반 양반집의 그것과 다릅니다.
후궁은 중전 간택을 할 때 후보로 뽑힌 여성인 경우가 많았는데,
최종 후보로 뽑혔던 규슈인만큼 집안도 좋고 이러저러한 덕목들이 갖춰져 있다고 봐야합니다.
그리고 궁 생활을 어느정도 해왔기 때문에 적응도 잘 할 것이라 믿었고요.
특히 윤씨의 경우, 세조의 비, 그 당시 가장 웃어른인 정희왕후와 같은 파평윤씨 집안이었습니다.
그래서 정희왕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후궁이었던 윤씨가 왕비가 됩니다.
성종의 제 2계비인 정현왕후, 훗날 자순대비도 윤씨입니다.
후궁이었던 윤씨가 중전이 된 것은 그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것도 작용을 합니다.
중전이 되자 마자 윤씨는 아기를 낳게 되는데,
이 아기가 왕이 된다면 정말 축복을 받는 왕실의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.
왜냐하면, 이때까지는 왕실의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.
그만큼 강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 될 수 있는 배경이 연산군에겐 있었습니다.